고래의 꿈 - 남태평양 피지&통가고래 와칭투어 (2015년 11/12월호)

 

깊은 산골 산과 들로 뛰어놀던 10대를 보내고, 사회현실을 부정하며 치열하게 보낸 20대를 뒤로한 채, 서른 살 늦은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쳇바퀴 돌 듯 30대 직장생활을 하며, 40대에는 또 다른 도전과 보람찬 삶이 기다릴 것이라 기대해 왔지만, 정작 40대에 들어서는 왠지 무기력해지고 ‘뭐 하고 있지?’ 라는 공허함과 ‘뭘 해야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답 없는 고민과 불안함이 지속되면서, 내 것이 없는 단순하고 잉여롭지(?)못한 생활을 보내며 집-회사-술집-노래방을 전전했다.
이때 이 노래를 참 많이 불렀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이 시기에 지금은 PADI 강사가 되신 황욱 교수님의 추천으로 노마다이브를 만났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동안의 쳇바퀴 생활을 보상받을 요량으로 많은 경험을 하며 결국에는 다이브 마스터 코스까지…. 이 지면을 통해 빌딩 속에서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고 있는 나에게 고향의 향기를 들려주며 ‘꿈’을 꾸게 해준 황욱 교수님과 노마 김수열 CD님께 감사의 애정을 표한다.

 

 

처음 다이빙에 입문하는 다이버들은 대부분 꼭 한번 바다에서 만나고 싶은 꿈이 있는데 나는 그것이 ‘고래의 꿈’이었다. 그것도 혹등고래……. 왜, 언제부터 혹등고래의 꿈을 꾸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빌딩 속을 헤매는 시기 또 하나의 위안이 된 이 노래 때문이 아닌가 싶다.
“파란 바다 저 끝 어딘가 사랑을 찾아서, 하얀 꼬리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
의 큰 고래, 이렇게 너를 찾아서 계속 헤매고 있나~~~”
다이브 마스터 코스가 마무리될 때쯤 드디어 ‘고래의 꿈’을 실현할 기회가 왔다. 노마다이브의 ‘한 번의 일정으로 고래와칭과 상어피딩 두 가지를 즐길 수 있는 피지 & 통가다이빙 투어’여서 기대가 되었다. 그러나 비싼 비용의 압박
과 장기간 험난한 일정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중년의 저질체력으로 합류하는데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삶의 여정에서 언제 올지 모를 ‘고래의 꿈’ 실현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인생은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전체 투어 일정은 정말 험난했다. 인천에서 피지난디, 피지난디에서 통가타푸, 다시 통가타푸에서 바바우 섬까지 혹등고래를 보기 위해 세 번의 비행기를 갈아타며 가는 데만 3박 4일이 걸렸다.

 


그러나 통가의 바바우 섬까지 가는 3박 4일의 여정은 결코 잊지 못할 즐거움과 부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무엇보다 함께 여정을 떠나는 개성있는 8명의 투어 멤버들이 있어 좋았다.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느냐’가 진정한 다이빙 투어의 성공 요소(?)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멤버였다.
9시간 가량의 비행 후, 피지의 난디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남태평양의 강렬한 아침 햇살과 쾌적한 날씨를 느낄 수 있었다. 기온은 우리의 늦여름/초가을 날씨와 비슷하였다. 입국 수속을 위해 가는 길에 3명의 피지언이 기타를 치며 환영의 노래인 ‘불라 말레야 Bula Maleya’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날(28일) 새벽 통가타푸의 국내선 공항에서 1시간가량 경비행기를 타고 바바우 섬에 도착해 Puataukanave Hotel에 체크인한 후, 바로 스노클을 준비해 고래 와칭에 나섰다. 10명 내외로 탈 수 있는 작은 보트를 이용해 바다로 향했다. 가이드가 고래 와칭 시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는데, 우선 고래를 볼 수 있는 것은 그날의 상황에 따라 만날 수도 못 만날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복불복인 셈이다. 그리고 고래가 발견되면 4~5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가이드와 같이 입수할 수 있으며, 나머지 한조는 보트에서 기다렸다 교대하여 와칭할 수 있고,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입수하는 것은 금지된다고 한다. 또한, 다른 보트에서 고래를 발견할 경우에도 발견한 보트에서 와칭이 끝나고 나면 가능하다.
이날 고래 와칭 때 바다는 너무 험했다. 엄청난 파도와 바람이 작은 보트를 흔들다 보니 몇몇 멤버는 뱃멀미에 고생했다. 역시 혹등고래는 우리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 멀리 혹등고래의 숨 쉬는 장면이 발견되는 순간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드디어 보트가 바다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우리는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스노클을 준비해 바다에 입수했다. 망망대해 1~2m의 파도 속에 뛰어들기가 망설여졌지만 모두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보트에서 100m 정도 스노클링으로 앞서간 가이드 근처까지 가 바닷속을 내려다보니, 바다 깊은 곳에서 어디론가 유유히 헤엄쳐가고 있는 길이는 10m 정도의 혹등고래 2마리를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한 마리는 양쪽 지느러미가 흰색으로 빛나고 있어 쉽게 눈에 띄었는데 또 다른 한 마리는 뒤늦게야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만나는 혹등고래의 모습에 흥분된 나는 감동이 밀려오면서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몸 전체가 감동으로 들썩거렸다. 혹등고래를 보고 보트 위에 올라와 모두가 상기된 목소리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다른 보트에서 어미와 새끼 혹등고래를 발견하였다는 무전이 와서 파도를 헤치며 그 곳으로 달려갔다. 두 번째 입수했을 때는 어미와 새끼 혹등고래가 나란히 가고 있었다. 새끼 혹등고래는 어미 배 밑에서 얼굴을 빠끔히 내밀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살펴보는 듯하더니, 숨을 쉬기 위해 수면으로 올라왔다가 재롱을 부리며 지나가기도 했다. 첫 번째와는 또 다른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고래가 포유류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으며, 어미의 덩치가 왜 그리도 큰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날(29일)도 일찍 고래 와칭을 위해 바다로 향했다. 이 날도 역시 바다는 험했다. 저 멀리 혹등고래의 숨 쉬는 장면이 발견되어 우리는 입수할 기회를 노렸다. 이번에는 3마리였다. 아마도 아비와 어미 그리고 새끼가 한 가족인 것 같다. 그러나 새끼 혹등고래의 안전을 위해서인지 이 가족은 우리를 피해서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우리의 입수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쉽지만 배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곳에서 어미와 새끼 혹등고래가 발견되어 달려가니 벌써 여러 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입수했을 때, 새끼는 어미 앞을 가로막으며 좀 더 놀고 가자는 재롱을 피우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며, 우리 앞을 지나가기도 하고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를 뛰어오르는 장관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렇게 교대로 2번의 와칭을 하고 아쉽지만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바다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에서의 동굴 스노클링은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혹등고래 와칭이 끝나고 다음 날은 일요일인데 통가 전체가 법으로(?) 쉬는 날인지라 우리도 바바우 섬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휴식을 취했다.

 


바바우 섬 마지막 날(31일)은 SEA FANS과 CHINA TOWN이라는 포인트에서 2회 스쿠버다이빙을 진행했다. 포인트는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작은 시골의 해지는 들녘과 낮은 골짜기 같은 느낌이었으며, 팔라우와 사이판 사이트를 섞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혹등고래 와칭과 다이빙을 마치고 리조트와 그 주변의 몇몇 Bar에서 보낸 4일간의 저녁은 함께한 멤버 하나하나가 제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정말 유쾌하고 즐거운 밤이었다. 화려하지 않은 동네와 조용한 밤하늘 아래 섬으로 둘러싸인 잔잔한 바다 위에 정착해 있는 작은 요트를 바라보면서 음악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맥주로 혹등고래를 본 흥분을 나누고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주변에는 대부분 연세가 좀 있는 듯한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과 다이버들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도 현실에서 고단한 4~50대를 보내고 그분들처럼 노년의 여유를 꿈꿀 수 있을까? 하는 조금은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20대의 젊음을 누리는 것도 왠지 사치스럽고 30대와 40대에는 치열한 몸부림으로 보내다 50대는 물론 그 이후 노년에서도 별별 걱정을 다해야 하는 여유롭지 못한 현실이라 생각되어 지금의 이 자리가 더 소중하고 짧은 것 같았다. ‘놀아본 사람이 놀줄 알고 노는 것도 익히고 배워야 한다’고 비록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많은 경험 속에서 여유로운 삶의 구력을 배우고 익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즐겁고 조금은 아쉽게 바바우 섬을 뒤로 하고 여섯 째날(9월 1일) 우리는 피지에서의 상어피딩을 위해 또다시 한 시간의 통가타푸 행 비행과 3시간의 피지 난디행 비행 후, 2시간 정도의 미니버스로 피지의 코랄코스트 지역에 위치한 고급리조트에 도착했다. 리조트는 지금까지 경험해본 리조트와 비교가 안 되게 웅장하고 멋스러웠다. 마치 통가의 시골에서 도시로 온 느낌이었다. 우리는 호주에서 온 2명의 귀여운 부부 멤버와 인사하고 다음날 있을 상어피딩 다이빙을 기대하며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2일) 아침 리조트에 있는 다이빙에서 상어피딩과 관련된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바다로 나갔다. Bistro라는 상어피딩 포인트에 도착해 다른 일행이 오길 기다리다 시간을 맞추어 입수했다. 상어피딩이라 조금 은 상기되고 긴장하면서 조심스레 포인트에 앉아 상어를 기다리는데, 눈앞에서 수십 마리 각양각색의 고기떼와 덩치가 큰 상어떼(Bull Shark, White-tip Reef Shark 등)들의 어우러진 모습은 장관이었다.
두려움을 느끼기보다는 흥분되고 그들과 같이 어울려 다이빙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서 반복되는 상어피딩과 너무 많은 물고기떼로 인해 흥분이 조금 가라앉으면서 뒤쪽의 난파선 주변의 경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늦은 시간에 심해에서 올라온다는 Tiger Shark를 만나기 위해 2번째 입수를 했으나 아쉽게 만나지 못했다.
이번 투어의 마지막 날(3일)은 리조트 근해에서 코랄 다이빙을 진행했다. 이곳의 지형은 해변을 따라 산호가 목걸이처럼 연결되어 있어 해변에서 바라보면 1~2백 미터 바다 쪽에서 파도가 부서지는데, 해변의 그곳까지는 낮은 수심에서 수많은 코랄이 형성되어 있고 그곳을 벗어나면 바로 월(Wall)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포인트 2곳에서 다이빙을 즐겼다. 포인트의 지형은 바바우 섬의 포인트보다 조금 더 웅장했고 산호초가 많은 예쁜 포인트였다. 지난 투어에 경험한 투바타하와 사이판을 섞어놓은 듯한 포인트였다.

 


이렇게 이틀 동안의 다이빙 이후, Warwick FIJI 리조트에서 보낸 휴식은 조금은 화려함 속에서 혼자 해변을 거닐며 외로운(?) 명상의 시간도 가져볼 수 있었다. 또한, 주변의 많은 연인과 가족단위의 관광객과 어린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왠지 혼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내 주변에는 여전히 8박 9일 동안 험난한 여정과 파도를 헤치며 ‘고래의 꿈’을 실현한 멤버들이 함께하고 있었다.너무나 감사하게도…….
다시 말하지만, 어딜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가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 멤버들이 있어 너무나 유쾌하고 즐거운 투어가 될 수 있었다.
이 지면을 통해 오랫동안 버디로 투어와 다이버 마스터 과정을 함께한 동영 아우님, 투어 내내 우리에게 큰 웃음과 먹을거리를 만들고 제공한 승민 아우님, 이것저것 우리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소해준 내공 있는 인석 강사님, 무엇이든 먼저 정리하고 진행하며 알찬 투어를 이끈 상연 강사님, 2만 평의 유혹에도 넘어오지 않고 어깨춤을 추게한 영숙 아우님, 뒤늦게 합류했음에도 낯설지 않게 즐거움을 함께한 주미/보람 부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누구보다도 수많은 수다와 무거운 카메라로 연신 우리를 포즈 잡게 한 진투어 박재협 대표님과 항상 웃으면서 전체 투어를 이끈 노마다이브 김수열 CD님, 그리고 주한 피지관광청, 통가관광청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글 박재훈 / 사진 노마다이브 진투어

글쓴날 : [15-11-21 14:00] 스쿠바다이버기자[diver@scuba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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