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행복한 봉포에서 (2017년 11/12월호)

 

그곳에 가면 바다가 행복하다.
그곳에서 다이빙하면 바다도 행복하고 다이빙 내내 나의 마음도 같이 행복해진다. 필자가 처음 봉포를 간 것은 2001년 김관일 사장님이 운영하였을 때였다. 지금은 그분의 아들인 김석호 강사가 맡아서 운영을 한다. 어느새 봉포 바다를 알게 된 지 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나는 봉포의 바다를 다 알지를 못한다. 바다는 계절과 시간, 날씨에 따라 우리에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우리는 다 보지도 못한 그 바닷속의 모습을 몇번 보지도 않고 다 본 것처럼 얘기들을 한다. 봉포의 바다를 들어가면, 갈 때마다 새롭다. 어느 때는 길을 가다 길을 잃은 나그네에게 길을 안내해 주는 길잡이 역할 같기도 하고, 어느 때는 갈색 헤이즐넛 커피의 달콤한 향을 풍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또 어느 때는 삶에 지쳐 힘이 들 때 잠시 위안을 주는 그런 여러 가지 모습을 담고 있다. 이렇듯 이곳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이빙할 때마다 다르지만, 올해 유난히 길었던 추석 연휴의 마지막 요일에 봉포 바닷속은 지친 나에게는 잔잔한 미소를 물해 주는 그런 바다였다.

 

연휴 마지막 날인데도 많은 다이버들이 다이빙을 준비 중에 있었다

함께 다이빙을 한 버디 최규홍 씨


가끔은 해외 바다가 부럽지 않을 만큼 훌륭한 시야가 나올 때도 있고, 때로는 5m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물속이 뿌옇게 보일 때도 있지만 이날은 그리 나쁘지 않은 시야였다. 갑자기 차가워진 물속에서 드라이슈트 없이 들어온 다이버들은 허락을 하지 않은 심술궂은 모습이기도 했다.

첫 다이빙은 도담삼봉을 향한다. 버디와 입수 후 수심이 점점 깊어가면서 어느 순간 수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미쳐 바닥까지 내려오지 못한 이버들은 추위에 망설이듯 봉우리 위에서 한참을 지나다닌다. 크나큰 암반을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고 있으면 물색깔이 너무나, 너무나 파랗다. 그 위를 지나다니는 다이버들은 작은 액자 속에 수채화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나의 공기방울이 차가운 물속에서 쉼 없이 급하게 수면을 향하면서 지나가는 다이버를 밀치고 올라간다. 연약한 물방울은 아무 소리도 없이 부서지고, 부서진 방울은 작은 알갱이가 되어 물속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사라지는 물방울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약간의 조류에 몸을 맡기어 본다. 우주에서 유영을 해본 경험은 없지만 내가 우주에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순간을 느껴본다. 조류를 거스르기에 힘에 부치지만 커다란 암반 사이의 멍게를 붙잡고 조류를 거슬러 본다. 어느새 암반의 절반을 돌아보고 처음 하강했던 자리로 나의 몸은 되돌아와 있다.

 

방어대포인트에서 안전정지 중인 다이버


버디의 상승 수신호에 맞춰서 수면으로 올라가면서 도담삼봉의 웅장한 암반들은 다시 내 발밑에서 조용한 안녕을 고하고 있다. 아쉬운 작별이 아닌 다시 찾아와 달라는 회심의 미소와 함께 나는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손을 흔들어 준다. 하지만 버디의 공기가 얼마 없다는 수신호에 맞춰 커다란 암반을 향해 미처 다 나누지 못한 작별 인사를 채 하기 전에 나의 몸은 어느새 수면에 올라왔고 잠시 동안 나의 마음은 수심 30미터 바닥에서 여전히 나오지 못하고 있다. 배에 올라가고 나서야 이제 오늘의 첫 다이빙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에 대한 회상과 다시 현실의 세상으로 되돌아온 것이 실감이 난다.

 

K2 포인트에서 만난 눈꽃송이갯민숭달팽이


두 번째 다이빙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K2 포인트로 갔다. 하강 라인을 따라 내려가면 라인이 바닥에 닿기 전에 좌측으로 계곡이 형성되고 그 계곡 사이로 화려한 ‘뿔부채산호’의 모습이 눈이 들어 온다. 순간 입속으로 “으악 ~ !” 하면서 마우스피스 사이로 물이 들어오듯 감탄사가 나오며 살포시 입이 벌어진다. 동해바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더구나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도 만들기 힘든 그런 모습을 한 자연경관이 지금 나의 눈에 펼쳐진다. 아마 나는 ‘봉포’ 하면, K2 포인트의 이 모습이 늘 생각이 나서 여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수중랜턴을 비추면 물감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핏빛보다 진한 빨간색에 자기만의 때깔을 찾아주고, 그 색상에 눈과 마음이 다른 곳은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매혹적으로 은은히 빠져든다.

 

인공어초 포인트


계곡을 한 바퀴 돌고 좀 더 깊은 수심을 내려가 본다. 다시 옆에 암반으로 이동도 해본다. 표면에 붙은 뿔부채산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본다. 볼락무리가 덩달아 모델을 해 주지만 카메라의 한계를 느낀다. 빛이 부족해서 카메라에는 다 담지 못하고 그 아름다운 색깔을 눈으로만 기억하게 된다. 아쉬움을 느끼기에 DSLR 카메라에 욕심이 생긴다. 이렇게 머릿속에서 우린 추억이란 단어를 만들며 두 번째 다이빙을 마친다.

항으로 돌아오는 내내 짧은 순간들은 어느새 아련한 기억이 되어 떠나지 않는다. 수심이 깊지만 않다면 다시 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인공어초 포인트


세 번째 다이빙은 방어대로 향했다. 방어대 역시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수심이 깊지도 않으면서 계절마다 그 느낌이 다 다르다. 봄 내내 무성했던 모자반 숲은 하나도 없고 가을이 되면 바닥에 커다란 홍합이 지천에 널려있다. 모자반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홍합들이 위장하고 싶어도 맨살이 다 들어나 보인다. 여기저기 주먹보다 큰 홍합들이 널려 있다. 작은 암반 틈으로 문어들은 눈동자 감추는 소리만 내고 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아무도 모르지만 다가가면 그나마 그 눈길조차 잊혀지게 더 깊은 곳으로 숨어 버린다. 1차, 2차 다이빙 때와 달리 수온이 따뜻하다. 돌돔 무리가 주위에서 떼를 지어 돌아다닌다. 마지막
다이빙은 카메라를 두고 간 것이 후회된다.

 

도담삼봉 포인트


어느새 다이빙을 마치고 올라오니 연휴의 마지막 노을이 지고 있다. 수면으로 올라오면 우리에게 다시 새로운 일상이 시작된다. 물속에서는 행복하고, 봉포에 가면 그 바다가 행복하고 나 역시 그 바다에서 또한 행복을 느낀다.
오래돼서 노후된 시설이 불편하지만 그만큼 좋은 포인트가 있고 친절히 챙겨주는 김석호 강사가 고마워서 또 찾아가게 된다. 앞으로 얼마만큼 더 봉포를 갈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봉포의 수중 환경이 계속 가꾸어졌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인공어초 포인트에서 볼락 무리들

 

 

글/사진 이상훈

 

 

글쓴날 : [18-01-05 11:11] 스쿠바다이버기자[diver@scuba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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