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흔든 질병과 치유의 역사 ⑨ (2019년 5/6월호)

천형의 병을 치유한 레덴토레 성당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테레의 운하 근처에는 1522년에 지어진 옅은 벽돌색 건물의 인쿠라빌리 병원이 있다. 이 병원은 당시에 불치의 병으로 지목받던 매독에 걸린 창녀들을 격리한 곳이다. 현재는 아카데미아 미술관 부속의 미술 학교로 이용되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의 물류 및 교류의 중개 도시로 번창했던 베네치아는 당시 유럽에서 이름난 항구도시였다. 아드리아 해의 크고 작은 섬들을 교량으로 연결한 항구 도시 베네치아는 선박이 항구에 정박하면 술과 여자로 지새는 뱃사람들로 흥청거렸다. 16세기 초 베네치아의 인구 10만여 명중 10%가 창녀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항구 도시에 매독이라는 새로운 질병이 상륙했다. 매독은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가지고 돌아온 선물 꾸러미였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일행은 히스파니올라 섬(현 아이티 섬)에 도착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현지 여성들의 풍토병인 매독을 몸에 받아들였다. 다음해 콜럼버스 일행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개선장군처럼 귀국했을 때, 이 꺼림칙한 성병도 함께 유럽에 들어왔다.

매독은 베네치아에도 침입했다. 그 시대에 이 성병을 막아낼 방법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많은 창녀가 닳고 닳은 뒤 매독에 걸리면 마지막엔 불치병 환자 병원에 수용되었다. 아니, 수용이 아니다. 용도가 끝난 여자를 이곳에 가두었다. 그리고 이곳을 ‘인쿠라빌리(가망이 없는 병자)’로 이름지었다.

 

 

당시 매독의 병원균인 트레포네마 팔리덤(창백한 스피로헤타)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환자들은 치료법으로 유창목을 달여 차로 마시거나 백해무익한 수은 요법 따위에 매달렸다. 일본인 하타사하치로가 독일에 유학하던 당시에 개발한 ‘네오살바르산’이나 마법의 탄환으로 알려진 항생물질도 20세기 중반까지 기다려야 했다.
인쿠라빌리 병원은 나중에 고아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때는 창녀와 부업으로 매춘을 하는여자뿐만 아니라 건강한 여성들도 낙태, 유아 살해, 영유아 유기가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시대였다. 매독에 걸린 창녀와 고아들을 받아들이는 인쿠라빌리는 인간의 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소였다.


귀데카 운하를 끼고 자테레 수변로의 건너편에는 귀데카 섬이 펀펀하게 놓여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레덴토레 성당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레덴토레 성당은 베네치아를 덮친 페스트 퇴치를 기원하기 위해 1592년에 건립되었다.
1576년 베네치아에 흑사병이 대유행하며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했다. 사람들은 신에게 구원을 요청하였고, 만약 이 역병을 물리쳐 준다면 새로운 성당을 짓겠노라 맹세했다. 그 약속에 따라 1년 후 흑사병 창궐이 종언을 고하자 곧장 성당 건립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성당을 ‘레덴토레(구원자의 교회)’로 명명되었다.


운하를 사이에 둔 양쪽 능선에는 각각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병원과 역병 퇴치를 기원하는 성당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매독에 걸린 창녀들은 전신이 곪고 문드러지며 발진과 궤양으로 뼈까지 녹아버리는 심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죄 많은 불치병으로 낙인찍힌 그녀들은 여기서 오롯이 천국의 부름을 기다렸다.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그리스도에게 바친 레덴토레 성당이 자신들을 구제해 줄 것으로 그녀들은 굳게 믿었다.
그 당시 매독은 신벌과 천벌로 여겨졌다. 기독교도는 사후 천국에 갈 것인지 지옥에 갈 것인지 최후의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그날 하루의 끼니를 때우기 위해 몸을 판 대가로 천형의 병을 얻은 여자가 마음속으로 의지하는 것은 천국의 심판이 아니었을까? 병원의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레덴토레는 현세를 체념한 그녀들이 그토록 바라는 사후 세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매독에 걸린 여자는 병동에 처넣고 퇴물 창녀는 신세계에 노예로 팔아먹던 시대. 그러나 매독에 걸린 죄가 여자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날그날의 생활을 위해 몸을 파는 여자들의 절망적인 비애와 매일 자신의 소중한 뭔가를 잃고 살아가는 나날 끝에 병에 걸리면 사회에서 말살되었다. 그리고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채 여기서 죽음을 기다려야 했다.

쉼 없이 배와 보트들이 오가는 자테레의 운하에서 물결치는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땅거미가 질 무렵 검푸른 수면과 여광이 비치는 파란 하늘 사이에 레덴토레 성당이 둥실 떠 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면 주황색 조명으로 빛나는 성당의 정문을 그녀들은 아마 천국의 문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녀들에게 이 성스런 성당은 천국에 갈 수 있는 희망이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의 등불이었다. 땅거미가 짙어지고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에 천국이 있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라 그녀들이 올려다본 그때 그 별이 지금 내 눈앞에도 펼쳐지고 있다. 자테레의 운하 수면을 타고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는 인간의 죄를 속죄하는 구세주의 노래처럼 그녀들의 몸과 마음에 사무쳤을 것이다.
매독이라는 천형의 병과 싸우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그녀들을 치유한 것은 뜻밖에도 강 건너편에 보이는 레덴토레 성당이었다. 그녀들의 가엾은 혼을 감싸 안은 신의 품처럼 성당의 첨탑 너머 밤하늘에 별들이 따듯하게 빛나고 있다.

 

 

글 오카다 하루에(岡田晴惠) / 옮긴이 황명섭

 

 

 

글쓴날 : [19-05-09 14:06] 스쿠바다이버기자[diver@scuba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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